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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월 쿠키!/★ TIP & 자료

시나리오 작법 TIP - 전투는 꼭 필요한 것일까?

전투는 꼭 필요할까요?

 

뜬금없는 질문인가요?

어떤 분과 대화를 나누는 과정에서 잠깐 등장한 질문이었습니다. 

그때의 질문을 좀 더 길게 복원하면 대충 저런 내용이 됩니다. 

 

"시나리오를 쓰려고 하는데, 전투가 꼭 들어가야 하는 건가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당연히 아닙니다.

 

룰에 따라 전투의 중요도는 천차만별이고, 시나리오 수준에서 보면 더욱 그렇습니다.

 

"그럼 필요 없군요?"

 

아, 아니 그렇게 쉽게 결론 내릴 수 있는 문제는 아닌데...... 

 

오늘은 그런 이유에서 전투를 집어넣거나 배제하는 것이 생각보다 중요한 선택일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이것은 단지 룰이나 시나리오의 장르적 특성만으로 결정하기에는 꽤나 중요한 선택이기 때문입니다.

 

이 선택의 중요성을 파악하려면, 전투가 어떤 역할과 기능을 하는지 알아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사실 전투는 단지 물리적으로 치고받는 과정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거든요. 

 

물론 그냥 취향픽도 가능합니다. 

지금부터 하게 될 이야기는, 무슨 시나리오 작법의 이데아적인 내용이 아니거든요. 

어느 쪽이냐면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효율성과 경제성에 관한 내용에 가깝습니다. 

 

 

하지만, TRPG는 투쟁을 원한다

 

TRPG보드게임의 워 게임 장르가 역사적으로 접점이 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지요.

대표적인 룰인 D&D를 떠올려 보면 쉽습니다.

이름부터 던전과 드래곤”아닙니까? 

 

전은 전투를 하기 위한 장소이고,

드래곤은 전투에서 만나게 되는 가장 강력한 적의 이름입니다.

 

초기의 D&D는 전투 외의 장면은 전투에 더 몰입할 수 있도록 당위와 목적을 만들어주는 양념같은 것이었습니다. 

 

거친 표현이기는 하지만,

과거에는 전투를 하기 위해’ 시나리오가 존재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습니다. 

 

이후 다양한 룰이 나오고 많은 장르적 변형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잘 바뀌지 않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것은 아직도 많은 룰에서 캐릭터의 스펙이 전투 관련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아예 전투 규칙만으로 이루어진 규칙들도 굉장히 많습니다. 

그 외의 상황에서는 내가 알 바 아니니 대충 적당히 진행하라는 식의 룰들이죠. 

 

이럴 수 있는 이유는 일단 전투가 그 자체로 재미있기 때문입니다. 

 

앗, 오해의 소지가 있는 말을 해버렸군요. 

[전투 = 재미있는 거]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이렇게 정리하는 게 좋겠군요. 

 

 

[전투 자체가 재미있는 룰들이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일단 여기에서 고려해야 할 부분을 하나 식별할 수 있습니다.

 

[사용하는 룰의 전투 의존도가 얼마나 되는가?]

 

사실 이것만 놓고 보면 상당히 무책임한 결론이 납니다.

작성하려는 시나리오의 룰이 전투 친화적이면 전투를 마구 집어넣고, 그렇지 않으면 줄이거나 아예 배제하라.

이 정도는 정보나 조언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약간 다른 방향으로 접근해 보려고 합니다.

 

룰의 전투 친화성, 그리고 재미와 무관하게,

전투 자체가 하는 역할은 뭘까요? 

 

분쟁의 해결수단? 

 

 

보아라, 나는 강하다! 

기본적으로 전투는 캐릭터의 성능을 시험할 수 있는 가장 쉽고도 명확한 방법입니다.

전투는 숫자의 합계와 비교로 진행되는 절차입니다.

 

내가 수치 1만큼 감성적이 되었다는 것은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지만,

수치 1만큼 공격력이 올라갔다는 것은 확실하게 드러납니다.

 

이것은 현재 상황만이 아니라 캐릭터의 성장과도 연결됩니다.

전투는 이전에 비해 캐릭터가 분명히 성장하고 발전했음을

가장 직접적이고도 명백하게 체감시켜 주는 이벤트입니다. 

 

레벨 등 성장 요소가 배제되거나 제한되어 있는 룰이라면 어떨까요?

그런 룰이라고 해도 시나리오 내의 성장을 구현하는 방법으로 전투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볼까요? 

시나리오 초반에 극복할 수 없는 적을 만났습니다. 

우리의 가여운 플레이어, 레벨업도 없는 룰이라서 울면서 물러날 수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나중에 다른 장소를 조사해보니, 못 박힌 각목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이제 심기일전, 이걸 들고 냅다 두드려 패서 이전에 물리칠 수 없던 적을 쓰러트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야호! 

아, 조금 억지스러운가요? 갑자기 예를 들자니까 조금 힘들긴 하군요.

하지만, 아주 간단한 방법으로 캐릭터의 변화를 확인하지 않았나요? 

전투는 캐릭터의 변화와 성장을 확인하기 위한 아주 쉬운 방법 중 하나입니다. 

 

다른 매체라면 다른 방법을 사용하는 것이 더 좋을 수도 있습니다. 

예전에는 다른 사람에게 양보를 하지 않던 주인공이 일정한 사건을 겪은 후,

양보의 미덕을 보여주게 되는 것은 영화에서 많이 사용되는 작법이죠.

게임의 형태로 제시되는 TRPG에서 이런 방식의 내적 성장을 보여주기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어떻습니까? 

1D4의 피해를 주던 나의 캐릭터가

이제 매턴 1D8+2+2+1D4+1+1D6의 피해를 주는 바바리안으로 성장했다면?

 

마스터! 제발 한턴만 더 싸우게 해줘요! 한턴만 더! 소리가 절로 나오게 될 것입니다. 

 

 

 

흔들다리 효과 

일부 룰을 제외하면, 대다수 룰의 전투에는 공통점이 하나 존재합니다.

그것은 전투에 난수가 개입한다는 점입니다.

 

명중판정, 회피판정, 거기에다 방금 때린게 몇점이나 피해를 줬을까하고 판정할때 주사위를 굴리잖아요. 

아, 다른 상황에서도 판정을 하는 게 아니냐고요? 

 

에이, 그정도를 이야기하는 게 아닙니다. 

인세인을 예로 들어볼까요? 

 

인세인 할때, 음, 4시간짜리 세션을 한다고 예를 들어보죠. 

 

4인 2사이클입니다.
클라이맥스전까지 한 명의 플레이어는 총 몇번의 판정을 하나요?

- 정답 : 2번 

그리고 전투입니다.
4인이 1시간 동안 전투를 했다면, 한 사람의 플레이어가 대충 몇번 정도 판정했을까요? 

- 글쎄요... 저도 잘 모르겠지만, 한 10번은 하지 않았을까요? 

 

 

방금 전까지 멀쩡하게 잘 걷던 양반이었는데,

갑자기 한걸음 내딛을때마다 돌려돌려 돌림판을 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이 발놀림이 실패했는지 성공했는지, 넘어지는지 아닌지,

갑자기 왜 이러는 거죠?

 

이는 앞서 말한 전투의 기능, 즉 캐릭터의 강함과 성장을 체감한다는 목적으로 전투의 기능을 한정하면 일견 모순되게 보일 수 있는 구조입니다. 내가 아무리 강해져도 주사위 운이 나빠서 피해를 입거나 전투에서 패배한다면, 강함과 성장을 체감할 수 없는 불합리한 결과 아닙니까?

 

1D4피해에서 1D8피해로 성장했는데,

8면체 10번 굴려서 모든 결과가 전부 4이하만 나왔다고 생각해보세요! 

 

빡치기는 하지만, 전투에는 또다른 기능이 있기 때문에 이런 것이겠지요? 

 

이는 난수의 원초적인 의의를 생각해 보면 간단합니다.

딱히 전투가 아니어도 난수는 다양한 상황에서 사용됩니다. 룰이 전투와 판정에 난수를 개입시키는 이유는 긴장감을 유발하기 위함입니다. 아무리 시나리오가 정교하게 제작되어 있고, 그것을 마스터가 박진감 있게 구현하더라도, 어떤 행동에대한 결과가 고정되어 있으면 긴장감을 발생시키는 쉽지 않습니다. 

 

아, 불가능하다는 건 아닙니다.

할 수 있어요.

 

근데, 그걸 쉽게하는 방법이 있다는 거죠.

 

간단하게 말하자면 시나리오에서 긴장감을 유발할 수 있는 간단하고도 쉬운 방법은 불확실성을 개입시키는 것입니다. 

 

하물며 전투는 패배했을 경우 캐릭터가 중대한 피해를 입거나 게임 오버까지 가능한 이벤트입니다.

긴장해라! 라고 소리지르지 않더라도 자연스럽게 긴장감이 높아질 수 밖에 없습니다.  

 

 

팝콘이나 가져와라 로빈 

이외에도 전투는 다양한 기능을 가집니다.

다인 시나리오라면 캐릭터들의 협력 플레이를 이끌어낼 수 있는 방법이 되고,

룰이나 시나리오 내에서 각 캐릭터들에게 부여되는 포지션을 확인시켜 주는 절차로도 기능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고전적인 분류인 탱딜힐로만 머무르는 것이 아닙니다.

이번에는 크툴루의 부름 이야기를 할 수 있겠군요. 

 

자, 지금부터 COC 다인 시나리오를 돌려드리겠습니다! 

여기 딱 앉아서, 다함께 캐릭터를 만들어 봅시다. 

어떤 캐릭터를 만들고 싶나요? 

 

이런 상황을 가정해보죠.

아마 앞으로 10분 내에 플레이어들의 입에서 이런 대사가 나오게 될 것입니다. 

 

"저는 전투캐로 짜고 있어요." 

 

나왔나요? 아니면, 이런말이라도 나올겁니다. 

 

"누구 근접전이나 사격찍으시는 분?"

 

음...... 이건 어때요?

 

"앗, 님 완전 전투캐네요. 나는 그냥 조사캐로 만들어야지."

 

안나왔나요? 큰일인데... 뭐 상관없죠. 

 

 

아무튼 전투의 비중이 낮은 룰에서는 이런 유형의 캐릭터가 등장할 수 있습니다. 

 

[비전투 상황에서는 유능하지만, 전투상황에서는 상대적으로 약한 캐릭터]

 

혹은 정반대의 유형도 마찬가지 입니다. 

이건 룰의 레벨에서는 전투와 비전투 상황의 비중이 애매하기 때문에 등장하는 모습입니다. 

뭐, 나쁘다는 것은 아니에요. 마스터링해야할 상황이면 적절하게 대응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그런데, 시나리오 레벨에서는 어떤가요?

전투와 비전투에서 각각 다른 특징을 갖는 설정을 구현하려면 전투는 거의 필수적인 이벤트로 자리하게 됩니다.

앞으로 이 시나리오를 어떤 성향의 플레이어가 플레이하게 될지 예상할 수 없는 상황에서 어느 한쪽을 명시적으로 배제하는 것은 상당한 부담이 될 수 있습니다. 

 

 

어쨌거나 이것은 효율성에 관한 이야기 

자, 결론입니다! 

이런 식의 판단은 좋지 않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런 판단이요. 

 

"나는 이런 룰이니까 전투는 배제해도 됨 ㅇㅇ" 

 

맨 처음에 효율성과 경제성에 관한 이야기를 했었지요? 

이것저것 구구절절하게 이야기를 늘어놓기는 했지만, 결국 효율성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전투는 아주 쉬운 방법으로 시간을 때울 수 있는, 재미있는, 캐릭터의 성장을 체감할 수 있는, 다양한 경험을 제시할 수 있는, 긴장감 넘치는 컨텐츠입니다. 물론 해당 컨텐츠가 제공하는 핵심요소들을 다른 방식으로 제공할 수 있다면 굳이 고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아주 쉽고 효율적인 방법이라는 것은 알아두시는 것이 좋을 거라고 생각해서 이렇게 구구절절한 이야기를 늘어놓은 것입니다. 어쨌거나 저런 것들이 필요하다고 여겨진다면 설사 전투에 친화적인 룰이나 장르가 아니더라도 전투 진행을 긍정적으로 고려하는 편이 좋습니다

 

여담이지만 너무 남용하지만 않는다면, 적정한 수준의 전투는 시나리오를 진행하는 마스터의 부담을 줄여주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시나리오를 진행하는 내내 능동적인 마스터링이 요구된다면 마스터도 지치지 않겠습니까? 

 

전투는 정해진 규칙 하에서 벌어지는 이벤트이므로, 

마스터에게는 다른 상황보다 부담이 적은 장면이 될 수 있음을 기억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