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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PG BOOK/[Quill]

K8-1 대피소 최종 소각에 따른 사후조치 안내

 

 

본 게시물은 스콧 말트하우스가 제작하고 이야기와 놀이에서 번역한 '혼자서 즐길 수 있는 편지 쓰기 롤플레잉 게임 퀼Quill' 비공식 팬메이드 시나리오입니다. 플레이를 위해서는 퀼Quill 규칙의 숙지가 필요합니다.

 

 '혼자서 즐길 수 있는 편지 쓰기 롤플레잉 게임 퀼Quill'은 이야기와 놀이 블로그 자료실에서 무료 배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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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8-1 대피소 최종 소각에 따른 사후조치 안내]


시나리오 소개

※ 프로젝트 쿠키가 크툴루의 부름 TRPG를 위해 제작한 팬 시나리오인 아우터 갓 신드롬의 배경 설정을 기준으로 작성하였습니다. 시나리오의 진상이나 스토리의 스포일러가 등장하지는 않습니다. 

아우터 갓 신드롬 첫 번째 시나리오 플레이어로 참가한 정도라면 내용을 읽어도 큰 문제는 없을 것입니다(캠페인을 진행 중인 상황이라면, 캠페인을 주관하는 수호자와 상담합시다).

 

 

세계인이 신뢰하는 어떤 다국적기업이 있습니다.

당신은 공식적으로는 그 회사와 무관합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회사의 피고용인입니다.

공식적인 관계가 아니라는 것은 당신의 업무가 기밀이라는 의미입니다. 당신은 본사가 한국에 설치한 벙커의 관리자입니다. 벙커의 위치는 본사 수뇌부를 제외하면 당신밖에 모릅니다. 위치조차 알려지지 않은 시설의 목적이나 기능 따위도 아는 사람은 달리 없습니다

 

벙커는 유사시 안전 주거로 이용하는 피난처입니다. 특히 한국 벙커는 지역 특수성이 적용되어 핵 방호 능력이 있습니다. 근거리에 핵미사일이 꽂히더라도 버팁니다. 열두 명이 한 달은 거주할 보급도 갖추었습니다. 세상을 믿지 못하므로 이런 시설을 만들었을 겁니다. 벙커는 지하 시설입니다. 지상에는 펜션이 있으나 위장용 펜션이 하나 있지만, 위장용이라서 손님이 오는 경우는 드뭅니다.

 

당신은 정기적으로 회사의 한국 벙커를 점검하는 사람입니다. 시설은 정교하고 넓습니다. 하루 안에 끝나는 작업이 아닙니다. 점검일에 일찍 벙커로 들어와 점검을 수행합니다. 다음날 마무리한 보고서를 온라인으로 보내고 퇴거합니다. 그래서 어제의 당신은 내일 입금될 수당을 생각하며, 즐거운 마음으로 숙직실에서 잠을 청했습니다.

 

다음날, 당신은 두 가지 사실 때문에 깜짝 놀랐습니다. 하나는 수당이 입금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세계적인 다국적기업이 임금 체불이라니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당신처럼 간접 고용된 근로자라고 해도 말입니다. 다른 하나는, 문이 잠겼습니다.

 

바깥으로 나가는 모든 문과 창문과 통로와 구멍이 차단되었습니다.

 

문을 열려고 해도 ‘권한이 없다는 메시지만 출력될 뿐이었습니다. 벙커는 비상시설입니다. 평소에는 사용되지 않습니다. 관리자를 빼면 방문하는 사람도 없습니다. 당신이 관리자이니 이외의 방문자는 없는 것입니다. 비로소 벙커에 갇혔음을 깨달은 당신은 다급하게 본사에 연락을 시도했습니다. 그러나 벙커 내의 모든 통신 시설은 먹통이었습니다.

 

당신은 불안함을 느꼈습니다. 벙커가 관리자의 통제를 벗어났다는 것은, 본사에서 지시가 있었다는 뜻입니다. 문제는 지시의 종류가 두 가지라는 점이었습니다. 첫 번째는 본사의 수뇌부에서 직접 폐쇄 지시를 내렸을 때. 그럴 가능성은 높지 않습니다. 무슨 사정이든 관리자가 들어오기 전이나 나간 후 폐쇄하는 것이 옳습니다.

 

두 번째 가능성이 당신의 불안함을 증폭시켰습니다. 두 번째는 회사의 최고 의사결정기구(CXOs)가 붕괴했을 때입니다. 어떤 이유든 수뇌부가 의사결정 불능 상태로 72시간이 지나면, 본사의 중앙 통제 시스템(CCS, central control system)은 세계에 산재한 회사의 주요 시설을 자동 폐쇄합니다. 생각해 봅시다. 본사 수뇌부가 의사결정 불능 상태란 무엇을 뜻하겠습니까?

 

직감적으로 당신은 TV를 켰습니다. 벙커의 모든 시설이 온라인에 기반하지만, 최상층 구석의 구형 TV는 안테나로 작동합니다. TV를 켜니 심각한 표정의 아나운서가 등장합니다.

 

금일 09시 정각을 기점으로 비상계엄이 발령되었습니다. 전 국민은 정부가 지정한 대피소로 이동하십시오. 모든 외부 활동이 금지되었습니다. 지금 외부에 계신 국민 여러분들께서는 신속히 대피소로 이동하십시오.”

 

질병관리청에서는 금일 09시 정각을 기점으로 감염병 위기경보 단계를 치명(Black)’으로 격상합니다. 규명되지 않은 감염병이 식별되었습니다. 모든 국민 여러분들께서는 대피소로 이동하십시오. 당국의 통제를 따르십시오.”

 

밖에서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요?

한 가지는 확실합니다. 당장 벙커의 문이 열리더라도, 바깥으로 나가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당신이 벙커에 갇히고 27일이 지났습니다.

당신은 하루도 숙면을 취하지 못했습니다. 밤마다 지상에서 들리는 소리가 귓가를 맴돌았습니다. 쿵쿵거리는 소리, 무언가 깨지고 부서지는 소리, 비명과 울부짖는 소리. 비명은 처음 일주일만 들렸습니다. 위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상상할 엄두조차 나지 않습니다.

 

지상파 송출은 보름 전에 끊어졌습니다. TV에서 나온 소식이 사실이라면, 바깥에는 끔찍한 바이러스가 돌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냥 바이러스가 아닙니다. 영화에나 나올 거라고 생각했던 좀비 바이러스입니다. 바깥의 상황이 이러하니 오히려 당신은 안전할 수 있었습니다. 본사와 연락이 끊어진 이유도 무관하지 않을 겁니다. 그렇다면 상황이 진정될 때까지 벙커에 있는 편이 좋지 않겠습니까?

 

그럴 수 없습니다. 반드시 여기를 빠져나가야 합니다. 엿새 전, 당신은 벙커 내에 울려 퍼지는 경고 메시지를 들었습니다.

 

K8-1 시설은 비상대책 매뉴얼 23항에 의거한 소각 단계를 활성화합니다. 소각 개시까지 623시간 59분 남았습니다.”

 

얼마나 꼼꼼한 일 처리입니까? 매뉴얼을 읽은 당신은 진지한 죽음의 위기가 다가왔음을 깨달았습니다. 벙커는 본사로부터 사흘간 어떠한 신호도 받지 못할 경우, CXOs가 붕괴했다고 간주하고 자동 폐쇄됩니다. 이런 상태로 3주가 지나면 소각 단계를 활성화시킵니다. 다시 1주 후 내부에 화재를 일으켜 모든 것을 태우는 프로세스입니다. 탁월한 증거 인멸이라 하겠습니다. 무슨 증거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입니다.

 

이대로는 꼼짝없이 타죽게 생겼습니다. 당신은 계속 본사와 연락을 시도했지만, 모든 시도는 무위로 끝났습니다. 이제 하루가 남았습니다. 컴퓨터 앞에 멍하게 앉았던 당신은, 유서를 써볼까 하다가 그만뒀습니다. 어차피 몽땅 타버릴 것입니다. 실없는 생각에 피식 웃음을 터뜨린 찰나, 스피커에서 띠링하는 소리가 들립니다. 메일이 온 겁니다! 어떻게?

 

메일의 제목이 이렇습니다. [K8-1 대피소 최종 소각에 따른 사후조치 안내] ……답신이 불가한 발송전용 메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실망할 때가 아닙니다! 메일이 왔다면 보낼 수도 있는 것입니다. 회선이 살아났습니다. 언제 다시 끊어질지 모릅니다. 당신은 급히 본사의 CXOs에 메일을 보내기로 했습니다. 소각 절차를 멈춰야 합니다. 여기에 사람이 있습니다!


서신 규칙

 

이것은 서신이 아니라 메일입니다. 
필체 판정이라는 표현 대신 오탈자 판정이라고 부릅니다(효과나 방법이 달라지지는 않습니다). 

 

맞춤법 검사기가 설치되어 있습니다. 오탈자 판정을 할 때 주사위 값에 1을 더합니다.


잉크병

 

천박한 표현 고상한 표현
지하 / 벙커 / 비밀장소 K8-1 대피소
회사 대행 업체
나(내가) 시스템 유지보수 담당자
당신 / 이봐요 / 거기 CXOs
살려줘(주세요) 지원
좀비 감염병
난장판 비상사태
내 돈 급여
불(지르기)  소각 절차
방송 통제 시스템

 


결과

 

■ 5점 이하

당신은 다급하게 메일을 보냈습니다. 보고용 메일은 자주 써봤지만, 이번에는 목숨이 걸렸으니 격식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지금 그런 게 중요하겠습니까. 바이러스 때문에 난장판인 세상은 둘째 치고, 타죽게 생겼는데 말입니다. 메일을 보낸 당신은 초조하게 답신을 기다렸습니다. 보낸 메일의 수신자 열람이 확인되었을 때만 해도, 이제는 살았다 싶었습니다.

 

하지만 그뿐이었습니다. 상대는 메일을 읽었지만 답신을 보내지 않았습니다. 무엇이 잘못되었나 싶어 다시 메일을 전송했으나 허사였습니다. 잠깐 연결되었던 회선이 끊어진 것입니다.

 

한 시간마다 안내 방송이 들립니다. 소각 시간을 알리는 방송입니다. 당신은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마지막 방송이 들립니다.

 

“소각을 개시합니다. 아직까지 내부에 남아있는 인원이 있다면 즉시 이탈하기 바랍니다.”

 

문을 잠가 놓고 이탈하라니 어처구니가 없습니다. 최하층부터 불길이 치솟기 시작합니다. 최상층까지 올라왔지만 소용없는 일입니다. 무의미함을 알면서도, 당신은 지상으로 통하는 출입문에 의자를 집어던졌습니다.

 

어? 문이 열렸습니다!

 

아니, 부서졌다고 하는 편이 옳습니다. 잠금장치가 박살나면서 문이 열렸습니다. 어느새 열기와 연기가 등 뒤까지 쫓아왔습니다. 어서 밖으로 나가야 합니다!

 

그럴 수 없었습니다. 문이 열리자마자 보인 것은, 밖을 가득 메운 사람들이었습니다. 당신을 구하러 온 사람들일까요? 열기와 연기를 잊게 만들도록 짙게 풍기는 피비린내가, 당신의 헛된 기대를 산산이 박살냈습니다.

 

피투성이 옷. 생기 없는 눈동자. 한쪽 팔이 없는 사람. 양쪽 손이 없는 사람. 턱이 떨어져 나간 사람……. 느릿한 걸음의 다리들 사이로 기어 오는, 상반신만 있는 사람. 저들이 괴이한 소리를 내며 당신에게 다가옵니다. 결코 저들은 당신을 구하러 온 ‘사람’들이 아닙니다. 이제는 물러날 자리도 없습니다. 등 뒤의 불길과 연기가 당신의 목덜미를 간지럽힙니다.

 

■ 6~9점

목숨이 하루 남았다고 여겨지면 평정심을 유지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나마 당신이 최소한의 격식을 차린 것은 습관 덕분이었을 겁니다. 회사의 ‘가장 높으신 분들’께 직접 메일을 보내는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평소라면 어림도 없을 일입니다. 물론 높으신 분들께서 직접 메일을 확인하시지는 않겠지만 누가 됐든 읽기는 할 겁니다.

 

밤새 기다렸지만 답신은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잠이 올 리 없습니다. 절박한 기다림만이 당신의 수면을 방해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위쪽에서 들리는 소음. 그것이 어느 때보다 컸습니다. 무언가를 찧어대는 듯 ‘쿵쿵쿵’ 하는 소리. 우지끈하며 나무가 부러지는 소리, 와장창하며 유리가 깨지는 소리. 사실 이런 것들은 괜찮습니다. 공사판이나 철거장에서 흔히 들을 소리입니다.

 

그러나 소음 사이의 울부짖음과 신음은 대체 무엇일까요. 사람이 내는 소리라 생각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저런 괴이한 소리를 내는 짐승이 있다는 이야기도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기괴한 소음이 들릴 때마다, 당신은 식은땀을 흘리며 놀랐습니다.

 

한 시간마다 소각 임박을 알리는 방송이 나옵니다. 이제 포기할 때인가 봅니다. 카운트가 0을 알리는 순간 당신은 주저앉아 눈을 질끈 감았습니다.

 

그리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소각 카운트가 끝났으나 불길은 오르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위에서 두려운 소음이 들리지만 그뿐입니다. 열기도 연기도 없습니다. 소각이 실행되지 않은 것입니다. 황급히 시스템을 살펴본 당신은 소각 절차가 완료 처리되었음을 깨달았습니다. 좀비들이 무언가 망가트린 것이 틀림없습니다. 살았습니다!

 

하지만 상황은 그대로입니다. 밖은 치명적인 감염병이 돕니다. 지상파가 끊어진 것은 인프라가 붕괴했다는 뜻입니다. 당신은 벙커에 갇혔습니다. 밖으로 나갈 수 없고 나가서도 안 됩니다. 자체 전력이 있고 보급품도 넉넉하니 당분간 생존에는 문제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언제까지 머물러야 할지, 나중에라도 나갈 수는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아무것도 예측할 수 없습니다.

 

■ 11점 이상

예정된 죽음을 앞두고 차분함을 유지했다면 충분합니다. 당신의 메일은 인사고과 담당자가 보았어도 칭찬할 수준이었습니다. 극한의 상황 속에서 사회인의 본분을 다했습니다. 곧 답신이 돌아왔습니다. 내부 인원이 식별되었으니 소각 중지 지시를 내리겠다고 합니다. 즉시 인력을 파견할 테니 현 장소에서 대기하라는 명령도 내려왔습니다.

 

생각해보면 대단한 일입니다. 치명적인 감염병이 창궐했습니다. 정부가 계엄을 선포했다는 것은 사태가 정말 심각하다는 의미입니다. 보름 전 끊어진 지상파 방송도 단순하게 넘길 일이 아닙니다. 인프라가 붕괴했다는 뜻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회사가 즉시 인력을 파견하겠다고 합니다. 역시 세계적인 다국적기업입니다.

 

당신은 안도와 기대가 섞인 마음으로 최상층 출입문 앞에서 하루를 기다렸습니다. 문득 위화감이 느껴집니다. 언제부터인지 주변이 조용합니다. 이상한 일입니다. 벙커에 갇힌 후 항상 당신을 괴롭힌 소음이 사라졌습니다. 깨지는 소리, 부서지는 소리, 그리고 사람인지 짐승인지 모를 기괴한 울음소리.

 

고요한 위화감은 한순간에 사라졌습니다. 출입문이 아니라 복도 한쪽이 폭발하며 이전에 없던 통로가 생겼습니다. 앞에 있었다면 크게 다쳤을 겁니다. 검은 옷을 입은 무리들이 안으로 쏟아져 들어옵니다. 일반인이라면 FPS 게임을 떠올렸겠지만, 당신은 저들이 누구인지 압니다. 어째서 출입구가 아니라 땅굴을 파서 들어 왔는지는 알 수 없지만, 회사의 사설 무장인력입니다. 지금이야말로 안전해졌다고 생각한 당신은 한 걸음 앞으로 나갔지만, 뜻밖의 외침이 들립니다.

 

“움직이지 마라.”

 

무장인력은 복면을 썼습니다. 손에는 총을 들었습니다. 한국에서 총이라니 가능한 일인가 싶지만, 회사는 가능할 겁니다. 하지만 당신은 피에 젖은 전투화를 보고 말았습니다. 새로 생긴 통로로부터 짙은 피비린내가 물씬 풍겨옵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당신은 저항할 생각이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상대들은 순식간에 당신을 제압해 쓰러뜨렸습니다. 무슨 말을 해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거칠게 당신을 제압한 무장인력 중 하나가 무전기로 상황을 보고합니다.

 

“K8-1 진입 및 목표 인원 확보. 감염증 발현 징후 없음. 대피소로 이송하겠음.”

 

보고가 끝나자마자 한쪽 팔이 따끔합니다. 직후 의식이 급격히 흐려집니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이 사람들이 당신을 어떻게 하려는 걸까요. 더 이상 생각할 수 없습니다. 시야가 흐려지고 사고가 침전됩니다. 당신은 의식을 잃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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