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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월 쿠키!/★ 룰 소개

룰 소개 - 호텔 리스베르타 세계관 비하인드(하) (w. 연어)

본 게시글은 연어(@salmon_please)가 작성하고
프로젝트 쿠키가 '격월 쿠키'로 대리 배포하고 있습니다.

 

안녕하세요, 호텔 리스베르타 제작자 연어입니다.

 

이번에는 지난 시간에 이어 남은 설정을 풀어보도록 하겠습니다.

 

혹시 지난 글을 읽지 않으신 분들은 지금 보고 오세요! → https://projectkuki.tistory.com/280

 

룰 소개 - 호텔 리스베르타 세계관 비하인드(상) (w. 연어)

본 게시글은 연어(@salmon_please)가 작성하고 프로젝트 쿠키가 '격월 쿠키'로 대리 배포하고 있습니다. 안녕하세요, 호텔 리스베르타 제작자 연어입니다. 호텔 리스베르타는 1920년대 이탈리아 제노

projectkuki.tistory.com

 


7. 렙티엔

 

렙티엔은 렙틸리언이라는 미국산 음모론에서 따왔습니다. 렙틸리언 음모론이란 유명 정치인과 연예인이 사실은 렙틸리언이라는 파충류 외계인이며, 그들이 인간으로 위장하여 인류를 지배하고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음모론은 미국 극우단체에서 유행하는 신뢰성 없는 이론입니다.)

렙틸리언에 대해 소개한 유명 음모 이론가 데이비드 아이크의 책 <데이비드 아이크의 X파일>, 라의 눈, 2019

 

 

렙틸리언과 흡사한 뱀이나 파충류를 소재로 한 신화적 존재를 따왔을 수도 있었겠지만, 현대적인 외계인 심상의 종족을 넣기에 좋은 타이밍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만들어온 이른바 판타지 장르에 속하는 세계와 달리 SF적인 분위기가 가득한 종족이 되었습니다. 정말로, 외계인이다! 이후 소개할 브레이브 월드에 사는 종족과 함께, 렙티엔은 가장 뛰어난 과학 기술력을 보유한 종족이기도 합니다.

 

렙티엔은 지구와 같은 차원의 다른 행성에 사는 파충류 모습의 외계인인데, 지구와의 거리가 너무나도 멀어서 차원을 건너는 방법을 발견하고 나서야 지구에 도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차원을 과학 기술로 뚫을 정도로 발전한 렙티엔이지만, 렙티엔 행성이 돌고 있는 태양의 수명이 다해 단체로 행성 이주를 떠나게 된 상황입니다. 그 상황에서 렙티엔 일부가 지구, 특히 미국 일대에 정착하게 되었습니다. 지구 환경은 렙티엔에게 맞지 않기 때문에 이들은 인간 형태의 수트를 착용합니다. <맨 인 블랙>을 떠올리면 금방 이해가 될 거예요.

 

렙티엔을 미국의 부유한 시외 가정과 결합하려는 시도에서 여러 설정이 뻗었습니다. 배경이 이탈리아였기에 오히려 미국을 과감하게 집어넣었어요.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는 미국, 새로운 부흥 국가 미국, 하지만 유럽은 아닌 미국. 그런 감각과 외계인을 결합하고 싶었어요. 아주 서글서글한 미국인이지만 어딘지 쎄한 사람들로요. 그들은 시외에 큰 주택을 짓고 살고 지하실에 뭔가를 숨겨놔요. 물론 우주선이죠. 미국처럼 급속히 부자가 되고(기술력과 지식 때문이죠) 영어로 자기들만 아는 대화를 해요(언어 번역기도 발명했을 것 같죠).

 

미국의 렙틸리언은 그저 지도층을 저격하는 음모론이지만 여기서는 미국 그 자체를 가리키는 느낌입니다.

시간이 흐르면 음모론과 똑같이 이 미국 지도층의 다수는 렙티엔이 되겠죠.

 

8. 릴리푸

 

릴리푸는 <걸리버 여행기>에 나오는 소인국 릴리퍼트에서 따왔습니다. 

 

Gulliver tied up by the Lilliputians, <Gulliver's Travels: Coloured Picture Book for the Nursery>, Thomas Nelson and Sons, 1883

 

 

걸리버 여행기에서 릴리퍼트의 귀족과 왕은 서로 반목하여 끊임없는 전쟁을 벌이고, 주인공 걸리버를 그 권력 다툼에 끌어들이려고 합니다. 이는 소설이 쓰인 당대 영국을 풍자하는 내용이었습니다. 저는 소설과 달리 배경을 16세기 유럽으로 시간을 앞당겨 식민주의가 발생할 수 없는 상황이면 어떨까, 하는 가정을 했습니다. 

 

릴리푸는 식민지로 삼을 다른 영토 없이 작은 대륙에 고립되어 있고, 한정된 물자로 생활을 영위하며 살아가는 거죠. 적은 인구와 한정된 물자로는 전쟁을 지속할 수 없기에 오랜 분쟁의 역사를 지나 정치적인 다툼만 하게 되었고요.

 

이렇게 가정을 한 이유는 물론 유럽 식민주의 역사를 틀어보려는 마음도 있었습니다. 세계가 너무 작고 협소해서, 외부로 뻗어 나올 역량을 기를 수 없고, 그래서 오히려 다른 차원과 접촉하면 휘둘리게 되는 겁니다. 

 

하지만, 본심으로는 작은 캐릭터가 구식 예법에 맞춰 말하고 행동하며, 유럽의 살롱 문화와 예술을 향유하는 모습을 즐기고 싶었습니다. 릴리푸의 설정을 보면 한정된 자원으로 세련된 문화를 향유하기 위한 릴리푸 사람들의 노력이 담겨 있는 것 같지 않나요? 16세기는 유럽의 르네상스 시기로 인간 중심의 문화적 분위기 속에서 근대적 예술이 꽃피게 되는 토양을 마련한 시기입니다. 원근법과 유화를 비롯한 근대 회화의 기초가 성립되는 시기이고, 중세의 검소함에 대한 반동으로 화려하고 과장된 패션이 유행하던 시기이죠. 만약 비슷한 역사의 흐름 속에 놓인 릴리푸 사람이라면 어떻게 자신의 신분을 드러내고, 사치를 부리며, 예술을 향유할 수 있을까요? 이런 즐거운 상상을 해본 것입니다.

 

물론 이런 관점은 제 취향이고, 릴리푸 종족으로 하는 플레이의 느낌은 영화 <박물관이 살아있다>의 미니어처가 살아 움직이는 역동적인 모습이나 소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앨리스가 작아졌을 때와 같은 활기참을 생각했습니다. 게다가 작은 사람은 쉽게 눈에 안 보이니, 사건을 일으키기도 좋겠죠.

 

9. 브레이브 월드

 

브레이브 월드는 <멋진 신세계>라는 소설의 제목을 빌려온 세계입니다. (소설과는 그다지 관련 없어요.) 이 차원에는 인류의 지위를 차지한 인공지능 생명체와 그에 밀려난 영장류, 그리고 하수인 인공지능이 있습니다. 관련된 레퍼런스를 말하려면 AI와 싸우는 온갖 SF 소설과 영화가 나오게 될 것 같은데요. 워낙 대중적인 소재라서 다양한 작품을 참고했습니다.

 

<웨스트 월드>, HBO 드라마, 2016

 

 

그중에서도 가장 많이 참고한 작품은 웨스트 월드입니다.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이 드라마는 인간과 구분되지 않는 안드로이드로 구성된 테마파크를 배경으로 합니다. 하필 테마파크가 서부극 시대 배경이라 처음에는 관심도 가지지 않았는데, 안드로이드와 인간을 구분할 수 있는가, 안드로이드는 어떻게 독자성을 구축하는가에 대해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는 드라마였죠.

 

이 드라마에서 영향을 받은 인공지능 생명체 르힐은 인간이란 무엇인가, 무엇이 인류를 정의하는가, 하는 문제를 고민하며 문명을 형성합니다. 인류를 침공하는 인공지능의 역습은 이미 성공했고 이 세계의 주 종족, 즉 인류는 르힐입니다.

 

토리야마 아키라, <드래곤볼> 신장판,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2018

 

<혹성탈출: 진화의 시작>, 2011

 

르힐에 의해 쫓겨난 르힐의 창조자인 로더프는 드래곤볼의 사이어인에서 따왔습니다. 외형적인 부분은 혹성탈출의 유인원에 더 가까워요. 로더프는 기계 문명의 기반을 잃은 후 르힐에 맞서기 위해 자신들의 신체를 유전자 강화하게 됩니다. 그 과정에서 초능력을 각성하기도 하고요. 타의에 의해서 로더프는 전투를 위한 전투 민족이 되었죠.

 

르힐은 그런 로더프를 세계의 끝자락으로 밀어내는 전쟁을 계속 수행하고 있는데, 전쟁에 직접 참여하는 병력은 르힐이 아니라 르힐을 수행하는 하수인 인공지능입니다. 사이오브라 불리는 이 로봇은 르힐과 같은 방식으로 작동하지만, 르힐에 속하지 않은, 오직 도구적인 목적을 위해 만든 것입니다. 르힐이 자신의 창조주를 밀어낸 것처럼 어쩌면 사이오브도 르힐을 밀어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만들었습니다. 역사는 돌고 도니까요.

 

10. 파리나마 나티암

 

동양풍 세계가 부족한 것 같아 만든 파리나마 나티암은 힌두교를 모티브로 한 세계입니다. 언어도 산스크리트어를 쓰고요. 힌두교의 많은 내용 중에서도 수라와 아수라라는 신적 존재를 차용했는데, 수라는 신, 아수라는 악마를 아우르는 큰 개념입니다. (힌두교에서 신은 보통 데바라고 불리는데 데바의 동의어로 수라가 쓰이기도 하고, 혹은 데바 중 하나를 수라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작자 미상, 물소 악마 마히샤수라와 싸우는 두르가 여신, 18세기 초

 

파리나마 나티암에서는 이들 모두가 평범하게 살아가는 생명입니다. 여러 개의 팔과 다리, 머리를 가지고 있는 모습이 비슷해, 외견만으로는 구분이 어렵습니다. 유일하게 다른 점이 있다면, 4주기를 따르는 삶을 사는 이들은 수라, 그리고 4주기를 따르지 못하게 된 이들을 아수라라고 부른다는 것입니다.

 

이 세계에서 4주기를 따른다는 것은 단순히 삶을 네 부분으로 나눈다는 것이 아닙니다. 실제로 이들은 인생에 3번 탈피를 합니다. <눈물을 마시는 새>의 나가처럼 탈피하고 나면(과정은 벌레의 변태에 가깝습니다), 레콘처럼 새 주기마다 새로운 생의 목표를 가집니다. 그렇다는 것은 아수라는 이 탈피를 하지도 않고 뚜렷한 생의 목표도 없다는 뜻이죠.

 

여기서 중요한 포인트는 수라와 아수라가 나뉘게 된 이유를 아무도 모른다는 점입니다. 수라는 4주기라는 자연의 이치를 따르지 않는 아수라를 점차 배척하게 되었지만, 누구도 왜 그들이 4주기에서 배제되었는지 알 수 없습니다. 일부러 수라와 아수라의 차이가 생겨난 이유를 설정에 구체적으로 명시하지 않음으로써 현실의 신분제나 소수자 차별에 합당한 이유가 없음을 비유하려고 했습니다.

 

11. 파스텔란드

 

여기까지 작업을 진행한 다음에 수를 세어보니 주사위를 굴려 종족을 정하기엔 아직 수가 모자란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최소 21개는 되어야 6면체 주사위 2개를 굴려 종족을 정할 수 있기 때문이었죠. 그래서 남은 두 종족 또한 한데 묶어 만들게 되었습니다. 물론 지금까지도 여러 갈등 상황을 만들기 위해 서로 반목하게 했지만요. (평화로운 자들은 티알피지에 필요 없습니다.)

 

<스플래툰>, 닌텐도, 2015

 

 

파스텔란드는 바다 생물을 넣어야겠다고 다짐하고 만들었습니다. 흔히 크툴루 신화와 같이 서양 문화권에서 두족류가 공포의 대상이 된다는 점을 생각해 노골적으로 비틀고자 했어요. 그래서 반짝이는 바다 윤슬과 함께 색색의 어패류로 집을 짓고 사는 하프후푸가 나왔습니다. 바다 생물들과 두루 잘 지내며 서로 공생하기도 하고, 가족과 마을을 사랑하는 순박한 종족입니다.

 

이미지로는 스플래툰을 참고했지만, 하프후푸의 실제 생활상은 픽사 애니메이션의 다큐멘터리 버전을 상상해 보면 비슷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런 하프후푸의 세계는 이대로 놓고 보면 아주 잔잔하고 아기자기해 보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 세계에 악마를 침공시킵니다.

 

다음에 설명할 다위벨이라는 종족의 일부가 파스텔란드의 마른 땅에 터를 잡고 하프후푸와 싸우게 했죠. 하프후푸가 다위벨과 싸울 때 물총을 쓰진 않겠지만, 먹물을 맞는 다위벨을 생각하면 여전히 잔혹한 그림은 그려지지 않네요. 그러고 보면 하프후푸의 피는 투명한 색일까요? 그렇게 생각하면 잔혹한 그림은 그저 인간인 저의 눈에만 보이지 않는 것일지도요.

 

12. 다위벨

 

다위벨은 데빌을 다른 방식으로 읽은 것입니다. 그야말로 악마. 악마가 출현하게 된 이유는 당시 악마가 나오는 웹소설을 읽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체셔냐옹, <프로로 마왕을 하는 중이다>, 페퍼민트, 2020

 

이 소설의 마왕군은 고향 차원의 에너지가 고갈되어 다른 차원의 에너지를 빼앗아 고향에 보내는 이들입니다. 그 과정에서 차원의 침공이 이뤄지는데, 주인공의 마왕군은 에너지의 갈취 대신 상생을 택합니다. 사실 이 소설과 다위벨의 설정은 큰 관련은 없습니다. 다위벨의 고향은 이미 멸망했고, 침략은 다위벨의 타고난 성품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그냥 영업입니다.)

다위벨의 여러 특성은 악마의 전통적인 이미지와 판타지의 이미지를 그대로 가져왔습니다. 그래서 다른 세계를 마구 침략하고, 사악한 계약을 하여 이득을 취하고, 타락(의식)을 통해 구성원을 채우며, 세력을 만들어 서로 영역 다툼을 합니다. 파스텔란드를 침략한 다위벨은 그 많은 세력 중 한 무리일 것입니다.

 

다위벨은 우그네라흐처럼 단일 종족이 아닌 종족적 상태를 공유하는 다종 종족입니다. 그리고 비슷하게 플레이에서 트러블 메이커로 활용할 수 있죠. 다른 점이 있다면, 다위벨은 다들 잘 살아있고 잘생길 수도 있다는 점일까요?


여기까지가 호텔 리스베르타의 세계관 비하인드였습니다. 제작 당시의 기록을 참고하고 기억을 떠올리면서 적어보았지만, 아마 그때와는 사뭇 다른 해석을 했을 수도 있어요. 그러니 앞으로 이 책을 읽고, 플레이에 활용하는 여러분은 여기 적은 것보다 더 많은 레퍼런스와 새로운 해석을 발견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럼 다양한 이야기를 기대하며 이만 마칩니다!